인생은 ‘여기’와 ‘지금’… 순간순간 작은 일에 기뻐하라
조선일보 김성윤 기자
2026. 6. 6. 00:32
[아무튼, 주말]
[김성윤 기자의 공복]
91세 정신과 의사 이근후가 알려주는
행복하고 유쾌한 100세 인생의 비결
![]()
이근후 박사는 여전히 긍정적이고 유쾌했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거의 들리지 않지만 책까지 펴냈다. 마이크와 헤드셋을 연결해 소리를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 대화에서 이 박사는 “좋든 나쁘든, 나에게 닥친 이 순간에 충실할 때 인생이 즐거워진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근후(91) 박사는 누구보다 풍성한 인생의 성취를 수확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폐쇄적이었던 정신 병동을 개방형으로 바꾸고, 정신 질환 치료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했으며, 한국정신치료학회를 설립하는 등 정신의학 발전에 공헌했다.
퇴임 후에도 아내인 사회학자 이동원(89)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공동으로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해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의 활동을 왕성하게 펼쳐왔다. 책 23권을 펴냈고, 이 중 유쾌하고 지혜롭게 나이 드는 방법을 쓴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40만 부 베스트셀러가 됐다. 76세 때는 고려사이버대 문화학과를 최고령 수석 졸업해 화제가 됐다. 40년 넘게 네팔 의료 봉사를 하고, 50년 넘게 보육원 아이들을 돌봤다.
평생 꽃길만 걸었을 듯싶지만, 현대사의 굴곡을 통과해온 이 박사의 젊은 날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는 기울었고, 계획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생이 좀 풀린다 싶으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어려서부터 병약해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던 그는 20여 년 전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당뇨·고혈압·통풍·허리디스크 등 각종 질병을 앓아왔다. 얼마 전부터는 그나마 희미한 실루엣만 보이던 오른쪽 눈도 실명했고, 혼자 일어나 걷거나 이동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활동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책 ‘오십부터는 단순하게 사는 게 좋다’(21세기북스)를 최근 펴냈다. 이 박사를 만나러 결혼한 자녀 부부와 손주들까지 3대 14명이 모여 사는 서울 구기동 자택을 찾았다. 인생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여전히 긍정적이고 유쾌했다.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잠자다가 죽었을 수도 있는데, 하루가 더 주어졌으니 열심히 살아야죠.” 이 박사와의 대화는 마이크와 헤드셋을 연결해 소리를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
자신의 새 책 ‘오십부터는 단순하게 사는 게 좋다’에 서명하는 이근후 박사.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불안, 끊어낼 순 없지만 희석할 수는 있다
-건강은 어떠신가요.
“뭐 보다시피. 노인인데 괜찮은 게 있겠어요(웃음).”
-책은 어떻게 쓰셨나요.
“출판사에서 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술하면, 민병인 선생(사회복지사)이 타이핑해서 나한테 들려주고, 그걸 바로잡는 방식으로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준비 없이 질문에 즉답이 가능한가요.
“사실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한 건지 몰라요. 91년을 살아오면서 배우고 익히고 경험한 내용이 응축된 자료가 즉답으로 표현되니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만.”
-나이 오십을 주제로 잡은 이유는.
“불안은 모든 연령층에서 가지고 있어요. 젊을 때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회복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십 이후에는 원인이 복잡하고 회복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십 이후의 연령대가 대부분 삶의 고비를 넘기면서 지난날을 회고하거나 반성하며 참회하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무기력·외로움 등 부정적인 감정이 더욱 증폭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찌감치 100세 시대를 이야기하고 준비해왔는데요.
“네팔에서 처음 들었어요. 좋아하는 등반을 위해 네팔을 자주 찾았어요. 네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수명을 100세로 설정하고 삶의 사이클을 4구간으로 구분하고 있더군요. 1~25세는 부모에게 배우고 사회에서 학습하는 시기, 26~50세는 익힌 것을 실행해보는 시기, 51~75세는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고 참회하는 시기, 76~100세는 모든 것이 자유로운 시기라고 합니다.”
-부정적 감정은 왜 중년 이후 증폭하나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나이입니다. 삶의 종착역에 가까워졌다는 인식입니다. 여생이 살아온 세월보다 적게 남아 있다면 초조감이 생깁니다. 질병이나 사업 실패 같은, 종말을 추정할 수 있는 실제 상황이 닥친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확신하게 될 것이니 두려움을 느낀대도 이상하지 않지요.”
-불안을 없앨 방법이 있나요.
“불안은 대부분 쓸데없는 걱정에서 비롯됩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지나간 일은 반복할 수가 없잖아요.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건 걱정을 가불하는 거예요. 50년 넘게 15만명을 진료하면서 깨달은 건, 삶의 고통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 집착해서라는 겁니다.”
-불안이 차오를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위적으로 끊어낼 수는 없어요. 잊으려고 애쓸수록 과거는, 미래는 괴물처럼 커져요. 방법은 재밌는 일을 찾는 거예요. 즐거운 일을 찾아서 하나씩 해야죠. 불안을 완전히 끊어낼 순 없지만 희석할 순 있거든요. 작은 재미가 오래 지속하면 콘크리트 같은 재미가 돼요. 섹스, 마약, 알코올 중독처럼 큰 쾌락을 추구하면 뼈아픈 대가를 치릅니다.”
-현명한 사람은 현재를 중심으로 산다고요.
“‘히어 앤드 나우(here and now)’라는 말이 있어요. 인생은 여기(here)와 지금(now)입니다. 좋든 나쁘든, 나에게 닥친 이 순간에 충실할 때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다른 곳, 바깥에만 시선을 두고 불행해합니다. 뇌에서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엔도르핀은 지금 내가 즐거워야 형성됩니다. 톨스토이가 말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라.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 지금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라.’”
-박사님은 어떻게 히어 앤드 나우를 실천하십니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만족하는 거죠. 순간순간 작은 일에 기뻐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점수를 받을 때 기쁘고, 아이들을 낳아서 키워낸 것도 기쁩니다. 친구와 좋은 인연을 쌓은 것도 기쁘죠. 네팔에 의료 봉사를 다니는 것도, 보육원에서 아이들 돌보는 것도 즐거워서예요.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해서 즐거우니 자꾸 하게 되더군요.”
살고자 애쓰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의 인생 전반부는 시련과 풍파로 가득했다. 일제강점기 태어나 6·25 전쟁, 가난, 질병을 가까스로 넘겼다. 대학에 가서는 4·19 혁명과 5·16 쿠데타 반대 시위 주동자로 10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출소하니 전과자 딱지가 붙어 유학도 취직도 막혔다. 고민 끝에 의사들이 기피하던 국립정신병원에 취직했지만, 난데없이 군대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그는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엔 위기가 많았다. 그다지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한때는 억울함도 느꼈지만 주저앉아 전부 포기할 게 아니라면 몸부림이라도 쳐야 했다. 그런 몸부림이 예상치도 않게 전혀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애쓰면, 막다른 골목에서 마법처럼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어머니가 물 근처도 못 가게 했다고요. 변을 당할까 걱정해서요.
“사춘기 시절 내 키는 이미 170㎝를 넘었지만, 한여름에도 소매가 긴 옷을 입고 다닐 만큼 병약했어요. 제대로 할 줄 아는 운동도 없었죠. 어머니는 엄격하셨어요. 아들이 ‘애비 없는 과부 자식’이라는 말을 듣는 게 싫으셨던 거예요. 내가 대구에서 자랐는데 금호강 줄기가 흐르는 신천에 친구들이 자주 갔어요. 어울리려면 따라가야 하는데, 어머니가 못 가게 해요. 고민 끝에 타협점을 찾았어요. 친구 따라 신천까지 가서는 물에 안 들어가 어머니 말을 듣는 거지.”
-대학에 들어가 어머니와 담판을 지었다고요.
“어머니한테 받은 사랑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벗어나려고 해도 무거워서 일어나지를 못하겠다.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금 한 돈, 쌀 100가마, 계량화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달라, 그걸 갚고 끝내자고. 그때까지 쌓였던 게 폭발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2남 2녀를 키우며 방목했어요. 뭘 하라고 시킨 일이 없고,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죠. 방목했더니 다른 집 애들보다 부모한테 의지하는 생각이 확연히 적어요.”
-정신과를 택한 건 4·19 시위 주동자로 수감됐을 때 같은 방을 쓰게 된 사형수와 도둑을 보면서였다고요.
“왜 어떤 이는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분노하고 힘들어하는데, 어떤 이는 큰 어려움도 편히 받아들이는지 궁금했어요.”
-국립정신병원에 지원한 건 역전의 기회였다고.
“일면식 없는 국립정신병원장에게 편지를 썼어요. 고맙게도 병원장이 저를 받아줬어요. 막다른 골목이라 생각했던 그 병원에서 오히려 좋은 스승과 많은 환자를 접하며 풍부한 임상 경험을 쌓았습니다. 대학 병원에 속한 의사라면 한두 스승에게 수학할 뿐이지만, 국립 병원인 덕에 여러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여러 유명 교수의 연구실을 들락거리며 배울 수 있었죠.”
-시절이 바뀌어 4·19와 관련해 사면되면서 입영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가정을 꾸렸는데 부양을 못 하니 괴로웠지요. 아내가 혼자 살림을 꾸렸죠. 아내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요.”
-1970년대 국내 최초로 정신과 폐쇄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고, 1974년 사이코드라마 치료도 처음 시작했습니다.
“내가 교도소에 갇혀봐서 알지요(웃음). 뜻밖에도 환자 가족과 동료 의사들이 반대하더군요. 환자를 묶고 가두는 것은 환자 보호가 아니라 관리자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라고 설득했습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이론서에 적혀 있던 치료법을 실제 치료 무대에 올린 것입니다.”
![]()
이근후 박사는 “삶의 고통 대부분은 쓸데없는 걱정에서 비롯된다”며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고리타분한 어린아이’로 늙지 말라
이 박사 부부는 두 아들, 두 딸 내외에 손주까지 13명이 4층 집에서 함께 살며 대가족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대가족이 미래 가족의 모습”이라고 했다.
-어떻게 3대가 함께 살게 됐나요.
“장남(천문학자 이명현 박사) 내외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요. 네 형제자매가 부모를 같이 모시자는 취지였지요. 네 자녀 내외가 모두 맞벌이를 해 급할 때 손을 빌려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어요. 각자 살던 집의 전세금을 합치면 집을 한 채 지을 수 있는 여유가 되더라고요.”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나요.
“내가 강조한 게 불간섭주의와 독립성 보장이에요. 자녀 집에 갈 때 반드시 전화를 걸어 먼저 허락을 구해요. 자녀 집 현관문 비밀번호는 아직도 몰라요. 각 가정과 개인의 일이 가족 전체의 일보다 우선하도록 했어요. 제가 계획한 가족 공동체 실험은 비교적 성공한 것 같아요. 손주들이 ‘할아버지가 가장 잘하신 일이 모여 살게 한 일’이라고 입을 모아요. 나이 들어 각종 병을 달고 사는 내가 최고의 수혜자죠(웃음).”
-신혼 이혼보다 황혼 이혼이 더 많다는 요즘, 아내 이동원 명예교수와 결혼 65년을 맞으셨더군요.
“우리가 결혼할 때 약속한 게 뭐냐면,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자는 거였어요. 그렇게 성공했는데, 대신 흔히 말하는 부부의 알콩달콩한 관계는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아쉽지는 않나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두 가지를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한쪽을 포기해야 다른 한쪽을 얻을 수가 있는 거지.”
-서로가 지키는 원칙이 있나요.
“상호 존중이죠. 평등하려고 노력했어요. 삼청동에 처음 집을 갖게 됐을 때 문패에 이동원 선생 이름을 먼저 썼어요.”
-새로운 형태의 대가족이란.
“옛날에는 한집에 모여 살아야 대가족이지만, 지금은 지구 곳곳에 흩어져 살더라도 연결돼 있으면 돼요. 인터넷이나 메신저 채팅방 등으로 소통하면 되죠.”
-손주들과 잘 통하는 모양입니다.
“노인이 되면 성장기 학습한 교양과 습관이 휘발돼요. 남는 건 부모에게 받은 DNA와 기질, 어린 시절의 가정교육뿐이죠. 그렇게 중간 교양이 사라져버리면 ‘고리타분한 어린아이’만 남아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노인은 젊은이 얘기 듣기를 즐겨야 합니다. 노인의 경험은 지나간 경험입니다. 지금 청년들에게 적합한 방법은 아니에요. 나는 100불이 안 되던 시절에 살던 사람인데, 지금은 3만불이 넘는 시대잖아요. 100불도 안 되는 사람이 3만불짜리를 가르치려고 하면 되겠어요?”
-그럼 나이 들어서는 조언은 하지 말아야 하나요.
“물었을 때만 성의 있게 대답해야죠. 미리 앞장서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부적절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 말을 듣고, 장년이 됐을 때는 배우자 말을 듣고, 노인이 되면 자식 말을 들어라’는 옛말이 지금도 유효한 듯합니다.”
-교수 퇴임 전부터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 오셨죠.
“대학에서 가르칠 때는 매년 신입생을 받잖아요. 덕분에 젊은이들과 교류했던 게 몸에 뱄어요. 청년들 말을 알아들으려고 애들이 쓰는 신조어부터 공부했어요. 어느 날 작정하고 신조어를 다 프린트했더니 A4 용지 5장이었어요. 그걸 벽에 붙여두고 모르는 말이 나오면 사전 보듯 찾아봤어요. 어느 순간 말귀가 트이더군요. 덕분에 인터넷 댓글도 잘 달아요(웃음).”
-아침에 눈 뜨면 행복하시다고요.
“행복이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작은 기쁨이 쌓이고 쌓여서 큰 기쁨이 돼요. 인생의 슬픔이 작은 기쁨으로 회복되진 않아요. 인생은 고통이고 슬픔이에요. 그 끝이 죽음이니까요. 기뻐서 기쁜 게 아니라, 기왕 살 거면 즐겁게 살자는 거죠.”
-어떻게 해야 죽음을 평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나요.
“죽음은 두렵습니다. 그게 정상이에요. 아무런 준비 없이 오는 게 죽음이에요. 죽음이 올 때 경건하게 받아들이면 돼요.”
그는 “나이가 들었다고 넋 놓고 죽음을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기세요. 베풀고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나요(웃음).”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https://v.daum.net/v/20260606003217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