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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생활

뇌과학으로 알아보는 수면의 힘

조회 492025. 11. 25.

 

정신의학신문 ㅣ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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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freepik

 

혹시 어젯밤 푹 주무셨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보거나 밀린 업무를 하느라 새벽까지 잠 못 이룬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잠이 부족하면 으레 커피 한 잔으로 버티거나, ‘나중에 몰아서 자면 되지’ 하고 가볍게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잠은 가볍게 넘기기에는 우리 뇌가 행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잠이 들면 마치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진 것처럼 고요하고 무의미한 상태에 빠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뇌는 그 시간 동안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특히 뇌과학의 발전 덕분에 잠이 우리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는데요. 한마디로 잠은 우리 뇌의 ‘청소와 재정비’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깨어 있는 동안 우리 뇌는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신경 세포들이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그 과정에서 ‘베타 아밀로이드’와 같은 독성 단백질을 비롯한 여러 노폐물들이 생성됩니다. 이러한 노폐물들은 마치 쓰레기처럼 뇌 속에 쌓이게 되는데, 뇌과학자들은 뇌척수액이 뇌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시스템을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뇌척수액이 뇌 조직 사이를 순환하며 노폐물을 씻어내는 시스템인데요. 낮 동안에는 거의 작동하지 않다가 우리가 깊은 잠에 빠지면 그 활동이 최대 10배까지 증가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잠든 밤이야말로 뇌의 청소부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시간인 셈이지요. 만약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 이 청소 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노폐물들이 계속 쌓여 결국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잠은 청소뿐만 아니라, 낮 동안 습득한 정보를 정리하고 저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할 때 뇌의 신경망에는 새로운 연결고리들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정보가 효율적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기억이 뒤죽박죽 섞일 수 있겠지요. 렘(REM) 수면과 서파(slow-wave) 수면을 오가는 수면의 주기 동안 뇌는 낮 동안 입력된 수많은 정보를 중요도에 따라 분류하고 정리하며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를 하다가 잠들면 다음 날 아침에 공부한 내용이 더 잘 기억나는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는 잠을 자는 동안 뇌가 학습된 내용을 뇌의 기억 저장소로 옮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렘수면은 낮 동안 겪었던 감정적 경험을 처리하고 조절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잠이 부족하면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예민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관련하여, 위스콘신 대학의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숙면한 그룹과 잠을 거의 자지 못한 그룹의 뇌 시냅스 크기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숙면한 쥐가 깨어 있던 쥐에 비해 시냅스의 크기가 약 18% 더 작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잠을 자는 동안 뇌가 불필요한 연결을 줄이고 다음 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수면 동안 시냅스가 약해지는 현상은 기억의 혼란을 예방하고, 뇌의 정보처리를 최적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면은 신경세포의 ‘리셋’, 즉 뇌의 피로회복과도 직결됩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쥐 실험을 통해 수면이 뇌의 계산 기능을 회복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활발히 활동한 신경세포들은 피로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수면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잠을 자고 난 이후에는 신경세포의 활동성이 눈에 띄게 살아납니다. 그러다가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신경세포의 활동이 서서히 잦아드는데, 이에 따라 정보처리 기능이 더뎌집니다. 이는 뇌가 밤사이 ‘정비’를 거치고 다시 최상의 상태에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해주는 자연스러운 회복 시스템을 작동함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수면 부족은 우리 뇌의 여러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판단력, 집중력, 창의력은 물론이고,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의 기능까지 저하됩니다. 만약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밤을 새워가며 고민하기보다는 차라리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잠든 사이 뇌는 문제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지도 모릅니다.

 

바쁜 일상에서 때로 우리는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잠은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입니다. 우리 뇌가 잠을 통해 어떻게 스스로를 돌보고 재정비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나면, 늦은 밤까지 잠을 미루는 대신 '이제 내 뇌에게 휴식을 줄 시간'이라며 기꺼이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밤에는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 뇌가 펼치는 경이로운 밤의 여행에 푹 빠져보시기를 바랍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 수면센터 ㅣ 정정엽 센터장

 

출처: https://v.daum.net/v/fz8gKCd8W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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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등록일 :
2025.11.30
06: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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