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AI 스위치를 끄는 날, 한국은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김현아의 IT세상읽기]
이데일리 김현아
2026. 6. 21. 17:15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최근 글로벌 AI 시장을 뒤흔든 앤스로픽의 외국인 접근 제한 조치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미국 AI 기업 간의 패권 경쟁과 워싱턴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본질은 따로 있다.
최우방국이라도 자국 이익과 안보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고성능 AI 스위치를 끌 수 있다는 냉혹한 리스크가 증명됐다. AI가 국방, 금융, 통신, 제조업 등 국가 시스템을 움직이는 핵심 인프라가 된 시대에, 특정국 기술에 대한 맹목적 의존은 치명적인 안보 위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중국과 연루된 어느 통신사가 문제였는가”가 아니다. “미국이 어느 날 갑자기 AI 스위치를 꺼버린다면, 대한민국은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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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기술이 아니라 지정학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기술 규제 이슈로 보지 않았다. 미국 내부 AI 기업들의 경쟁, 백악관의 정책 판단, 국가안보 프레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 정치권은 AI를 더 이상 민간 서비스가 아닌 국가 전략 자산으로 바라보고 있다. 반도체와 에너지, 통신망처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이번 논란의 핵심은 특정 한국 기업이 아니다”라며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우방국에도 AI 접근 권한을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 있다. 한국 기업들이 아무리 성실하게 서비스를 운영해도 최종 통제권은 프론티어 AI 모델을 보유한 국가에 있다. AI 주권이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현실적인 국가 과제가 된 이유다.
반도체 공급망이 국가 안보 문제가 된 것처럼 AI 모델과 컴퓨팅 인프라 역시 새로운 전략 자산이 되고 있다. AI는 더 이상 기술 경쟁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정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더 뼈아픈 것은 한국 기업들의 준비 부족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미국에 돌릴 수만은 없다. 한국이 이런 상황에 대비할 시간을 충분히 갖고 있었음에도 준비가 미흡했다는 점이 아쉽다.
삼성전자(005930)와 네이버(NAVER(035420)) 같은 국내 1등 회사들 모두 AI 전환 과정에서 내부 병목을 겪은 적이 있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해외 빅테크 출신 핵심 인재들을 영입했지만 조직 내 장벽과 사업부 중심 문화 속에서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에서는 유사 연구가 여러 조직에서 중복 추진되면서 자원이 분산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네이버를 둘러싼 아쉬움은 더 구체적이다. 과거이긴 하지만, 초거대 AI 인프라 투자 결재 과정에서 경영진이 “1200억짜리 장난감 잘 갖고 놀아달라”는 취지의 코멘트를 남길 정도로 AI 투자에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했다고 한다.
문제는 돈만이 아니었다. 의사결정 속도와 조직 문화, 미래를 바라보는 시야의 차이였다.
오픈AI와 구글, 메타가 수십조 원을 쏟아부으며 AI에 전사 역량을 집중하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신중했다. 그 결과 격차는 생각보다 빠르게 벌어졌다.
그래서 민관합동의 소버린 AI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가 내세운 프론티어 AI 전략은 단순한 산업 정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제조업 특화 AI를 넘어 글로벌 수준의 범용 AI 모델(프론티어 AI) 개발에 도전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GPU 인프라 확대와 국산 AI 반도체 육성, 데이터 생태계 구축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한국이 미국 빅테크와 같은 규모의 자본 경쟁을 벌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버린 AI는 모든 것을 독자 개발하자는 의미가 아니가 아니고, 기업 혼자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핵심 모델과 데이터, 컴퓨팅 인프라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권을 확보하고 외부 충격이 발생해도 국가 경제와 산업이 멈추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과거 한국이 반도체와 TDX(국산전전자교환기),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같은 이동통신 산업에서 그랬듯, 민관이 뭉쳐 AI 역시 장기적인 투자와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 학계가 함께 위험을 감수하고 시장을 키워야 한다.
AI 주권은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프라와 인재, 데이터와 시장이 함께 축적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기술 주권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
이번 앤스로픽 논란은 한국에 중요한 경고장을 던졌다.
AI는 더 이상 편리한 서비스만이 아니다.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자국 이익이 걸린 순간 기술 공급은 언제든 외교·산업 정책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이 AI 스위치를 끄는 날에도 한국 경제가 멈추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소버린 AI와 AI 인프라 주권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준비해야 한다. 기술 주권은 더 이상 산업 정책의 영역이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김현아 (chao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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