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중독된다는 건 욕망이 만들어낸 ‘결핍’[정신과 의사의 서재]
정신과 의사의 서재
일 년에 최소 100여 권을 읽는다. 문학보다는 인문사회, 과학서를 좋아해서 지식을 얻는 게 문학적 카타르시스보다 앞선다. 가끔 내가 ‘활자 중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필요한 정보라서 머리에 욱여넣는 게 아니라, 그냥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읽고 알고 싶다는 충동은 도대체 무엇일까.
‘내 행동의 동기는 모두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다만 너무 지나치면 증상이라 하게 됩니다
불안을 설명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생존과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불안은 주변의 위험을 감지하고 반응하기 위한 시스템의 과민반응이다. 그런데, 정보를 흡입하는 나의 행동은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식욕, 성욕과 달리 정보 욕구는 생존과 딱히 가까워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마이클 이스터의 ‘가짜 결핍’이 나의 의문을 풀어줬다. 초기 인류는 다른 동물과 달리 하루 13㎞를 걸어 다니며 사냥과 채집을 했다. 장거리 보행은 탐험으로 이어졌고,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 정착을 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곳의 정보를 얻어서 적응에 이용했다. 충분히 자원이 풍부한 곳에 있다 해도 동물과 달리 새 영역을 찾아 탐험을 했다. 이때 정보를 취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주변과 공유하는 능력은 생존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동물과 인간에게 식욕과 성욕은 공통적으로 존재하지만, 정보를 탐색해 소화시키는 것은 인간만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수만 년 동안 뇌는 새 정보를 얻고 탐색하도록 진화해 지금의 문명을 만들 수 있었다. 넓게 보면 정보 욕구도 생존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100이라 할 때, 99의 시간 동안 결핍 속에 살았다. 식량이 모자라 배가 고프고, 연료가 없어 추위에 고생하고, 생활을 위한 물자는 항상 모자랐다. 뇌는 기본적으로 ‘결핍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세팅이 돼 있다. 언제나 뭔가 모자란다고 여기고, 눈앞에 보이면 최대한 쟁여놓고, 흡수하고, 채우는 방향으로 행동해왔다. 적은 것보다는 다다익선이다. 이 신호에 잘 반응한 이들이 생존 확률이 높으니 유전자에 결핍이 각인된 셈이다.
문제는 21세기에 벌어졌다. 갑자기 인류의 삶이 엄청나게 풍요로워진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먹어서 비만이 생기고, 이미 있는 물건도 사들이는 과소비를 한다. 이제는 멈춰도 되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결핍 신호에 계속 반응하고 있다. 인터넷이 생기며 정보도 무한소비의 패턴으로 들어갔다. 더욱이 기회를 발견했을 때, 예측 불가했던 보상이 오고, 다시 그 행동을 반복할 수 있을 때 결핍의 뇌는 끝없이 그 행동을 더하게 되면서 결국 중독의 고리에 들어간다. 릴스나 쇼츠에 탐닉하는 것은 일종의 정보 중독이다.
저자는 풍요로운 세상에서 ‘가짜 결핍’의 신호에 반응해 다양한 중독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경고한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만족의 배 두들김으로 결핍 신호를 막아내는 것이 아닐까.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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