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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이야기

벌써 자정을 넘어 일요일 새벽이다.
천둥소리 요란하게 많은 비가 내린다.
나흘째 계속 내리는 가 보다.
그동안 비 때문에 푹 쉬어선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며칠전에 매제가 와서 같이 먹다 남은 소주가 펏뜩 떠 오른다.
낮에 사온 치즈 몇장을 안주로 오늘을 마감 하려 한다. 그럴수록 빗소리와 더불어 옛 시절이 떠 올라 눈만 더 말똥말똥하다.
다시 불을 켰다. 그리고 뭔가 지꺼려보고 싶다.
나는 횃불장학회의 마음이 가득한 편지를 받을 때마다 나는 생명을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있기에 나에게 그 주옥같은 名句가 담긴 편지가 도착되기 때문이다. 
한 달포 쯤 지나면 또 한통의 살아있냐고 묻는 편지가 올것이기 때문이다. 내 조그마하고 부끄러운 더함을 잊지 않고 꼬박꼬박 편지로 보내준 횃불장학회가 고맙고, 더불어 멋있는 글귀를 감상하는 재미로 기다려지는 이유가 나에겐 있다.  더군다나 이번에 온 편지중에는 내 나름대로 느껴지는 뭔가가 있어서 그 느낌을 큰 용기를 내여 몇 자 지어 보내긴 하는데 내가  極히 親한 몇 십명(99명까지)속에도 끼지 못하는 주제에 私的인 편지를 쓴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장학회 편지가 勸하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그 순간 나는 아무 뜻도 생각도 없이 좋은 책 이려니 하고 李厚洛(박정희敎의 신봉자)처럼 이유없이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는 急히 "까르푸"로 갈려갔다.  두껍지도 않고, 조그마한 詩集같은 책이 눈에 잡혔다.  호기심과 설레는 마음으로 무조건 집어들었다. 그리고 읽어내려갔다.
  그런데 말이다 平素에 나의 책에 대한 컨셉(concept)이 완전히 바꿔진 것이다.
몇 줄만 읽어보고 구입하려 했으나, 계속해서 장수 넘기기를 시간 반 정도...
나도 모르게 120여 쪽을 단숨에 서서 읽어버린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讀破를 한 것이다. 내 인내심에 놀라고 내용에 놀라 멍(!)하니 하늘을 보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느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먼저 치즈(cheese)라는 말이 돌아가신 어머님과 同時에 떠 올라왔다.
  6.25후에 美軍 援助品 中에는 통조림이 많이 있었는데 소시적 동창생들도 먹었던 記憶이 있을줄 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의 집 마루 한켠에 놓여진 쓰레기통 만한 크기의 치즈통이 뚜껑이 반 정도 열린 체 있었다. 
  정확히 1956년 대통령선거가 있을 무렵의 일이다.
어머니께서 얻어다 놓은 것이란다. 미국 사람이 상한 것을 우리나라에 거져 줬다는 소문처럼 사실 그때 치즈맛은 조금 시금 털털하고 지금의 맛으로 보면 좀 변질되지나 않았나하는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입맛에 맞지 않을 뿐더러 또 처음 接한 물건이라 거부 반응이었던지 어머님이 마실간 부잣집 식탁의 천덕꾸러기가 결국 어머니의 차지가 된 것이다. 수저로 몇 번 떠내본 자국이 있고 젓가락으로 몇 번씩 찔러 신경질 부려본 흔적이 있는 것이었다. 마침 놀러온 어머니께 마님이 주셨단다. 깡통 겉에는 온통 꼬부랑 글씨로 가득 채워졌는데 아들이 중학에 다니니까 그런 뜻쯤은 잘 알겠지 하고 도대체 무엇인가 아들은 알 것이라고 갖고 오셨단다. 
  나는 요게 무엇인가 辭典을 봤다. 분명 학교에서 농업시간에 배운 치즈와 똑같은 치즈의 뜻이었다. 그 당시 버터에 밥 비벼 먹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치즈에 밥 비벼 먹는 놈은 나 말고 또 누가 있었으랴? 그런데 난데 없이 보내온 편지내용에 치즈에 관한 것도 들어 있었으니 어찌 無感 할것인가 생쥐들처럼 빠릿빠릿하니 주위환경의 변화에  敏感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나는 倉庫에서 없어진 치즈만을 찾고 탓하고 또 남겨진 부스러기만 줍고 거기서 나오는 눈꼽만한 행복과 불행감으로 만족하면서 고등학교 졸업후 40여년간을 C(씨) 창고 앞에서 살아온 난장이 "헴과 허"꼴이 된 것은 오직 멍청한 내탓이요 내 책임이라. 이런 渦中에 그가 보내온 편지는 최소한 나에게는 한여름의 시원한 소나기요 목포앞마다  時下島의 등대 불빛이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한 말이지만 高卒後 십여일만에 그러니까 모든 친구들이 대학생활에 신나있을때 나는 고깃배를 한 3년간 타고 있었다. 東지나 海까지 출어하고 돌아올 때마다 멀리서 시하도 등대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특히 밤에 입항 할때는 더욱 그랬다. 살아왔구나 하는 안도감과 어떤 이상한 감정까지 어우려져 왈칵 울어버린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시점 뱃생활 덕분에 전라남북도 섬 중에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다. 지금의 내가 잘 풀려 있다면 그 때 젊은 시절의 어선생활은 낭만이고 좋은 추억이지만 아직도 텅 비어버린 창고 앞에서 없어진 치즈만 찾고 누구 탓만 하고 있는 어리석은 생활 사이클 때문에 그 기억은 지금도 쓰디쓰다 우이도 백사장 언덕이며, 가거도에서 독사에 물렸던 일, 흑산도 홍어잡이, 완도에서 톳 실고오다 스큐 류가 빠져나갔던 일, 만재도에서 배가 침몰하여 대여섯시간 표류하다 건져졌던 일, 지금 같으면 신문 나고 TV날 일이다. 생명이라는 것이 그렇게 질긴 것이었나 하는 마음이 이따금 들기도 한다.
참으로 암담했던 젊은 시절 가난과 좌절 까닭 없는 슬픔 그리고 내일을 예단 할 수 없는 망막한 나날들...
  그게 전부다. 아름답지 못하고 떨떠름한 내 과거의 얼룩진 파노라마 다. 그때부터 나는 이게 아닌데, 이런 것이 진짜 아닌데 하면서 수 십년을 지냈다. 아직 그런 대로 건강은 하지만 이제 피곤하고 지칠 나이다. 그러잖아도 뭔가 변해야 된다고 느끼고 있던 참에 용기를 준 한 통의 편지!" 변하지 않는 나를 비웃을 줄 아는 나..."
이 말 한마디를 독후감으로 두면서 변화를 摸索하는 사람으로 거듭나야겠다고 다짐하는 契機가 됐으면 한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소리 사이로 간간이 아내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나 만나 고생만 하다 깊이 파인 주름 잡힌 얼굴이 측은 해 이슬마저 맴돈다.
새벽에 마셔버린 술 때문만은 아닌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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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4.06.20
18: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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