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좋은글

머리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 두 분이 버스에 타셨는데, 자리가 앞뒤 자리로

좀 떨어져 두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두 분이 서로 가까운 자리로

앉으라고 권하시면서 떨어진 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그렇게 한두 정거장을 가다가 할아버지 옆자리의 승객이 내리고 자리가

새로 나자 할아버지께서 얼른 뒤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좋아하시면서 얼른 자리를 옮겨 앉았습니다.
 
일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 두 분이 나란히 앉아서 담담한 말투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반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했을 연륜이

발하는 향기가 주변에까지 은은히 배어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실례인 줄 알면서도 자꾸 눈길이 두 분한테로 가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주 단정하게 빗어 넘긴 두 분의 머리모양, 온화한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은색으로 빛나게 되는 것은 인생이

그만큼 잘 발효된 증거다.’라던 어느 분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때로는 비도 맞고 바람에도 시달리고 또 가끔은 따스한 햇살을 즐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익어가는 우리들 자신의 삶을 가끔은 좀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듯합니다.

 

김사인님의 <따뜻한 밥 한 그릇>에서.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이었겠지요.
글만 읽어도 바라보는 이의 감동과 온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그저 스치듯 보기만 한 사람의 마음에도 이렇게 따뜻한 기억으로 오래 남았으니
그 두 분의 삶은 ‘예술’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게도 오랜 기억 속에서 누군가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문학은 삶꽃’이라고.

 




글쓴이 : 여희숙님
profile
조회 수 :
192
등록일 :
2008.12.17
12:00:47
엮인글 :
게시글 주소 :
http://www.hfire.or.kr/167402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250 현재 삶에 만족하고 멈춘다면 인생의 중고품과 같다 횃불 2021-01-08 302
249 상하동욕자승 (上下同欲者勝) 횃불 2021-06-11 302
248 좋은글 첫번째 편지입니다. [2] file 횃불 2008-07-21 303
247 욕심 부려 더 많이 더 많이 원한다면 야망이 빈약하다는 뜻이다 횃불 2021-06-04 303
246 내가 여러 가지 책을 읽는 이유 횃불 2023-05-12 303
245 내가 나를 부수지 않으면 남이 나를 부순다 횃불 2020-03-27 304
244 안락은 악마를 만들고 고난은 사람을 만든다 file 횃불 2020-09-25 304
243 착한 일을 하면 내가 더 행복해진다 횃불 2020-10-02 304
242 남에게 다 주고 나면 주는 즐거움이 남는다 file 횃불 2021-07-09 304
241 조던이 타이거 우즈에게 해준 충고 횃불 2021-03-26 305
240 소원을 빌 때,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라 횃불 2023-07-07 305
239 감사가 행복을 불러온다 횃불 2020-04-17 306
238 내가 모은 것이 아니라 남에게 준 것이 남는다 횃불 2020-05-22 307
237 짧지만 강력한 링컨의 편지 횃불 2021-10-01 307
236 수고하셨어요 횃불 2016-11-04 308
235 몸에 밴 습관이 인생을 좌우한다 횃불 2021-01-29 308
234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람은 횃불 2021-04-30 308
233 가장 어려운 일과 가장 쉬운 일 횃불 2022-09-02 308
232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 횃불 2023-08-11 308
231 대화의 90%는 경청이다 횃불 2015-03-06 309
위로